김좌진 장군, 만주에서 암살당하다

김좌진 장군은 우리가 잘 알다시피 1925년 신민부를 설치하게 됩니다. 신민부는 그 당시 정의부, 참의부와 함께 삼부라고 하지요. 이것도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만주라는 특수 대이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이 부(府)라는 것은 정부를 가리킵니다. 말하자면 임시정부와 비슷한 기능을 자임한 건데, 다만 임시정부보다는 군사활동을 중시했다 볼 수 있죠. 군사부와 민정부로 나뉘어 있는 데도 있는데 민정부에서는 세금도 걷고 교육도 시키고 꼭 정부처럼 활동했습니다.

이와 같이 해서 북만주에 신민부가 생겼는데 나중에는 내분이 일어나서 군사부와 민정부가 대립하게 됩니다. 1927년경부터는 민족유일당 운동이 국내, 중국 관내 만주 등 세 군데에서 일어나게 되는데 이때 김좌진 장군도 참여합니다. 1929년 음력 12월 25일이니까 양력으로는 1930년이 되겠죠. 김좌진 장군은 자기가 경영하던 정미소 앞에서 총을 맞고 암살됩니다.

이때 총을 쏜 사람에 대해서는 이설들이 많습니다. 대체로 볼 때 고려공산당 청년회에 있었던 사람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올해 만주에서는 학자들의 회합에서 김좌진이 친일파 노릇을 했다는 것에 대해서 그것이 잘못된 견해라는데 의견을 모으게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왜 김장군이 친일파 협의를 받게 되었느냐 하면 그가 공산주의자들에 관한 정보를 일본 정보기관에 넘겨주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화요계 공산주의자가 그를 죽였다는 것이었는데, 당시 김좌진은 무정부주의 쪽으로 기울고 있어 이 때문에도 사회주의 청년들의 반감을 사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당시 김좌진부대에 있었던 이강훈 선생은 김일성(金一星)이 사주해서 박모가 총을 쏘았다고 하면서, 김일성 소영웅주의자로 사회주의자를 자처했는데, 여류소설가 강경애와 애인관계였던 것 같고, 일본 특무대에 속아 김장군을 암살한 것이라 하는데, 신빙성이 약합니다.

이것도 이강훈 선생한테 들은 얘기입니다만, 김좌진 장군은 비호 같은 역사여서 힘쓰는 사람들은 아주 좋아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을 주변에다 호위병으로 두거나 요직에 앉혔다고 합니다. 힘 잘 쓰는 사람들 중에는 거친 사람들이 많았겠지요.

이들은 김좌진 장군이 암살당해 지휘자를 잃어버리게 되니까 독립운동 하려는 마음도 약해져버리고 이해다툼을 했다고 해요. 그 당시 북로군정서에는 유명한 장군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김규식 장군은 역전의 노장으로 한말 의병장시절부터 그야말로 싸움을 많이 한 분인데 김좌진 장군 사거 후 아주 비참하게 죽었어요. 잘못한다고 타이르는 김규식이 눈에 거슬러 보이니까 역사들이 그를 끌고 나가서 야산에서 처참하게 죽인 것이지요.

홍범도 장군, 중앙아시아에서 만년 보내

홍범도 장군도 밀산회의가 있은 다음부터는 큰 활약을 보이지 않습니다. 1923년에는 한 농산조합을 이끌었다고 ‘레닌기치」에 씌어 있고, 1927년에는 레닌당 당원이 됐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볼셰비키 공산주의자로 되어 있는데, 공산주의를 알아서 공산주의자가 됐을 것 같지는 않고 정의롭고 평등하게 잘살자는 데 공명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러다가 1937년에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당했어요. 스탈린은 무지막지한 자여서 연해주와 흑룡강 일대에 살고 있던 한국인 10여만 명을 일제의 소련 침공에 대비한다고 하여 전혀 연고가 없었던 광막한 중앙아시아 먼 땅으로 끌고간 겁니다. 그래서 홍범도 장군도 거기서 살게 됐어요.

이분은 연금을 받았다고도 하고 1944 년에 죽을 때까지 여러가지 일을 했다고도 하는데, 한때는 극장 입구에서 일을 했다고 어떤 기록에는 나와 있어요. 당시 교포 중에는 태장춘이라는 희극작가가 있었는데 그는 홍범도 장군의 얘기를 듣고서 희곡을 여러 편 썼다고 합니다. 그것이 1940년대에 중앙아시아에서 많이 상영됐고 그 후에도 여러 차례 상영이 됐다고 하는데 그렇게 해서 중앙아시아 지방에서도 홍범도가 많이 알려진 것 같습니다. 홍범도는 스탈린그라드전투 때 군대에 지원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그래서 “당신같이 나이 많이 먹은 사람을 어떻게 뽑느냐? 안된다”고 했더니 “그러면 실력을 보여주지” 하면서 동전을 던져라 하고는 총을 쏘니까 그 동전이 구멍이 났다고 합니다. 그만큼 총을 잘 쐈다는 것이지요.

홍범도가 죽은 지역에 대해서 시베리아로 나와 있는 책들이 있는데, 이것은 틀린 것입니다. 또 몇 년 전에는 사회와 사상에서 두 차례에 걸쳐 연변에 사는 작가가 쓴 홍범도 얘기를 실었는데, 이 글에는 만주 쪽에서 만년을 보냈다고 하면서 무덤까지 발견했다고 썼습니다. 허위이지요. 연변 사람들이 홍범도 장군을 존경하다보니까 가짜무덤까지 생긴거죠. (웃음) 그리고 홍범도 장군은 가족이 없었다고 기록되어 있어요. 1950년대 초까지는 있었다고 전해졌거든요. 아무튼 홍범도 장군은 중앙아시아에서 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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