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임시정부와 한인사회당간의 알력

그런데 막상 가보니까 상해임시정부에서 벌써 짜놓고 자기 식대로 하려고 했어요. 그래서 문창범과 최재형은 돌아와서 1920년 2월 대한국민회를 다시 부활시킵니다. 여기서 대한국민회 사람들과 이르쿠츠크파 사람들이 연결됩니다. 그러나 이동휘와 이동휘를 따라 지휘부로 상해로 옮긴 한인사회당은 계속 상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잔존합니다. 상해파 고려공산당(1921년 5월 한인사회당이 발전적으로 해체하며 창당됨)과 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의 알력은 실제로 여기에서부터 생기는 거예요.

이동휘는 상해임시정부의 국무총리로 참여하면서 ‘상해 임시정부라는 것은 한인사회당의 정부이고, 한인사회당은 상해임시정부의 여당이다’라고 생각합니다. 앞서 잠깐 말씀드린 대로 코민테른 자금이 40만 루블 왔지 않습니까? 런데 한인사회당에서는 이 자금이 코민테른에서 당에 준 것이라고 했고 정부에서는 임시정부에다 준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40만 루블 때문에 사람을 죽이고 싸웠는데, 이 40만 루블은 국무총리 이동휘의 비서실장이었던 김립이 다 갖고 있었습니다. 김립이 갖고 있으면서 이동휘파들만 쓰니까 김구파에서 김립을 암살해 버려요. 김립을 암살한 사람이 대한애국단 소속입니다. 백범 김구는 사회주의자를 극도로 싫어했던 것 같고 그들에 대해서는 임정으로 들어오라는 것 외에는 다른 타협점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1930년대에도 김구의 그러한 입장은 일관된 것이었습니다. 김립이 살해된 자리에 있었던 사람이 김철수라는 사람입니다. 그는 제3차 조선공산당의 책임비서를 한 사람인데, 김립이 죽으니까 그가 은행에 가서 김립 명의로 남아있는 예금을 전부 자기 명의로 바꿔버렸어요. 그래서 자기가 지출을 하고는 후에 직접 코민테른에 지출보고를 합니다.

임정과의 결별과 좌절되는 무장투쟁

이동휘는 1921년 초에 국무총리를 사임하고 상해임시정부와 결별하였습니다. 그가 임정과 결별한 이유에 대해서는 현재 두 가지가 얘기되고 있습니다. 첫째는 경술참변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입니다. 즉 1920년 말 앞서 말씀드린 대로 만주지역 조선인들 수천 명이 일본군들에 의해 봉오동전투와 청산리전투에 대한 보복적 차원으로 살해당하자 임정이 이 사건을 두고 큰 고통과 회의에 빠지게 되었던 것은 충분히 상상이 되는 일입니다. 백성들이 그토록 죽었는데 정부가 도대체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했으니까요. 이 사건을 계기로 이동휘는 임정을 실제적 무장투쟁을 할 수 있는 기구로 개편하려고 시도하였습니다. 이동휘의 개편안은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동휘의 제안은 반대세력들에 의해 좌절되었고 이동휘는 임정의 민족운동사의 역할과 위치에 대해 재고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동휘가 임정과 결별한 또다른 계기는 앞에서 말씀드린 코민테른 자금사건이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이동휘는 많은 비난을 받았고, 그것은 한인사회당원 혹은 그와 연대하고 있던 인물들이 이동휘와 결별하고 오히려 적대관계에 서게 되는 형편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임정과 결별한 후인 1921년 5월 한인사회당은 고려공산당이 창당됨으로써 발전적으로 해체하였고 이동휘는 유럽을 돌아 러시아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코민테른은 이때 이미 이동휘에 대한 신뢰와 지원을 철회한 상태였지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동휘가 코민테른과 논의하지 않고 한인사회당의 독자적 판단에 의해 임정과 결별했다고 생각하고 있고, 상해임시정부를 통일전선체로 간주하여 이를 통하여 조선혁명을 수행하려고 했던 코민테른의 정책과 배치되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지원과 신뢰가 철회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유럽 여행중에 이동휘는 자유시참변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모스크바에서 그의 좌절과 울분을 받아줄 상대는 이미 존재하지 않았어요.

볼셰비키세력이 백위파세력들을 격퇴시키고, 마침내 콜차크정부를 무너뜨리고 그들이 차지하고 있던 시베리아 극동지역을 점차 평정해가기 시작하는 것은 1919년 후반기부터입니다. 1920년부터 러시아는 일본과 소일조약 체결을 위한 회담을 시작하였습니다. 수차의 회담을 거쳐 그것은 1925년에야 성립되지만 일본군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철수한 1922년 5월 이후, 이제 일본군이나 그와 연대한 백위파세력과 싸우기 위한 전력으로서 조선공산주의자는 이미 더이상 러시아에 필요한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1922년 말이면 코민테른은 모든 노령지역 한인들의 무장을 해제시켰고 상해파, 이르쿠츠크 고려공산당에도 해체를 지시합니다. 1923년부터 코민테른은 조선 내에 공산당을 설치하기 위한 실제적 사업에 착수합니다. 이후 이동휘나 그외 노령지역에 있던 조선인들의 무장투쟁이란 가능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