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음에 대하여

본 글에서는 어리석음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조나라의 수도 한단 사람들의 걸음걸이처럼 경쾌하고 우아한 걸음걸이는 없다는 소문을 연나라의 어떤 소년이 들었다. 그 소년은 연나라 사람들의 걸음걸이는 너무 촌스럽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멋지고 우아한 한단 사람들의 걸음걸이를 배우기로 마음먹고 한단 땅을 향해 길를 떠났다. 산을 넘고 강을 건너 십수일 만에 한단 땅에 도착한 소년은 유심히 한단 사람들의 걸음걸이를 관찰했다. “아, 다리는 저렇게 내고 손은 또 이렇게 흔드는구나.” 소년은 열심히 흉내를 냈다. 그러나 좀처럼 잘되지 않았다. “왜 안 될까?” 소년은 곰곰이 생각했다. “그렇다. 지금까지의 나의 걸음걸이가 나의 머릿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없애지 않는 한 새로운 걸음걸이는 배울 수 없다.” 이리하여 소년은 종래의 걸음걸이를 완전히 잊으려고 했다. 그와 동시에 더욱더 기를 쓰고 한단 사람 걸음걸이를 흉내냈다. 그러는 동안 세월이 많이 흘렀다.그러나 소년의 걸음걸이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이제는 더 이상 못하겠다.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가자.” 크게 절망한 소년은 발길을 돌리려고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원래 걸었던 걸음걸이마저 할 수 없었다. “이 일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소년은 하는 수 없이 설설 기어서 겨우 고향으로 돌아갔다. 이 고사에서 유명한 한단지보라는 성어가 비롯되었다. 자기 본분을 잊고 공연히 남의 흉내를 내다 보면 두 가지 모두를 제대로 할 수가 없고, 오히려 자기 본래의 것마저 잃어버리고 만다는 우의를 담고 있다. 지난날 우리는 유학의 아성 공자로부터 동방예의지국이란 찬사를 받았다. 또 인도의 시성 타고르는 우리 나라를 일컬어 ‘동방의 빛이며 등불이라’ 하였으며, 25시의 작가 게오르규도 <빛은 동방에서 온다>라는 시를 발표하여 우리의 높은 정신문화와 도덕문화를 찬양했다. 세계적인 두 시인은 우리 민족의 저력과 정신에 주목하여 미래의 찬란한 영광을 예견했다. 그 예견처럼 한때 한국인은 무섭게 일했고 무섭게 성장했다. 마치 “비를 만난 용’처럼 비상하여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경제 성장을 이루어냈다. 온 국민이 총화단결하여 근면과 성실로써 경제 기적을 일구어낼 때, 선진국은 바짝 경계했고 후진국에게는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온갖 수난과 역경 속에서도 우리 민족이 굳건히 지키고 발전 시켜왔던 정신문화와 도덕문화가 서구의 문화에 의하여 한때 형편없이 황폐화되고 그와 함께 많은 것을 희생하면서 이룩한 경제 성장도 무분별한 사치와 낭비로 심하게 휘청거린 적이 있다. 너무 일찍 부자가 되어, 그 복에 겨운 부가 2세 교육을 망쳤다. 오늘과 내일을 이끌어 갈 세대들이 부자 아버지를 둔 탓에 줏대없이 자라나 민족 특유의 자주성 마저 잃어버린 것이다. 우리 것도 지키지 못하고 서구의 것도 그 정신끼지 철저히 배우지 못한 반거충이들이 광란하는 사회, 한단지보의 고사와 정확히 맞아떨어지지 않는가? 본시 왕자로 귀하게 태어난 몸인데, 잘못되어 거지 신세기 된 시람이 있다. 그가 만약 자기 본래의 신분을 알았다면, 그는 왕자의 긍지를 가지고 왕자답게 인격을 가지려고 할 것이다. 이 옛날 이야기 속의 왕자는 어쩌면 당신 일 수도 있다. 댱신은 지금 자기의 가치를 스스로 낮추고 있지만, 사실은 몇 배, 아니 몇십 배나 훌륭히 될 수 있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당신은 결코 가치 없는 인간이 아니다. 그러니 분발하라! 분발하지 않고는 가치 있는 인간이 될 수 없다. 호가호위라는 성어를 낳은 이야기가 있다. 배고픈 호랑이가 여우를 잡았다. 그런뎨 여우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아니 오히려 당당하계 이렇계 말했다. “너는 김히 나를 잡아먹지 못한다. 하늘이 나로 하여금 백수의 우두머리가 되라고 명했기 때문이다. 만일 내 말이 믿어지지 않거든 내 뒤를 따라오면서 녜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라. 나를 보고 도망치지 않는 짐승은 한 마리도 없을 것이다.”호랑이는 여우의 말이 그럴싸하다는 생각이 들어, 어슬렁어슬렁 그 뒤를 따라갔다.그런데 정말 모든 짐승들은 그를 보고는 오금아 날 살려라 하고 도망을 쳤다. 어리석은 호랑이는 짐승들이 자기를 두려워하여 도망치는 줄은 모르고,여우를 무섭게 여겨 도망치는 줄 알았다. 이 우화에는 두 가지의 우의가 숨어 있다. 그 하나는 교활한 여우가 호랑이의 위엄을 빌려 제 위엄으로 삼는다는 말로써, 실력이나 능력이 없는 사람이 남의 권세를 빌려 위세를 부리는 것을 풍자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여우에게 이용을 당하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호랑이의 어리석음, 즉 지혜롭지 못한 권력자를 비웃고 있다. 세상에는 우화 속의 여우와 호랑이가 변하여 된 사람들이 상존하고 있다. 가끔 청와대 및 높은 사람을 사칭하여 사기극을 연출했다가 덜미가 잡힌 사기꾼들의 이야기가 매스컴에 오르내리는데 전형적인 호가호위의 사술이다. 심리학에 ‘헤일로 효과’라는 것이 있다. 우리말로 후광효과인데, 우리 사회에서는 이 효과의 영향력이 엄청나게 크다. 그래서 알지도 못하는 높은 사람이나 직업 등을 팔아먹는 사기꾼들이 백주에 설칠 수 있는 것이다. 걸핏하면 고관이나 유명인의 이름을 들먹이며 자기가 그 사람과 밀접한 관계기 있는 것처럼 행세하는 사람이 있다. 대부분의 경우 허풍이거나 거짓말이다. 그들은 제 자신에게 자신감이 없고 너무 하찮아 내세울만한 건덕지가 없기 때문에 그런 허세를 꾸며대는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열등감의 반동형성작용’이라 한다. 일반적으로 훌륭한 사람일수록 뽐내지 않는다. 정말 주위에 훌륭한 사람이 있더라도 후광으로 삼는 유치한 행동은 하지 않는 것이다. 유명인을 내세워 은근히 금품을 요구하는 자의 90퍼센트는 시기꾼이다. 1퍼센트를 남겨 놓은 것은 실제로 어리석은 호랑이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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