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회 조직과 독립운동

1913년에 채기중, 유창순, 김상옥 이런 분들이 풍기에서 광복회를 조직했어요. 풍기는 정감록』에 의하면 길지다. 피난지지다 해서 외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살았는데 그 후손들이 광복회를 만든 겁니다. 대한광복회의 대표적인 인물은 박상진으로, 이분은 대구를 중심으로 해서 이미 대한의군부, 국권회복단이라는 비밀결사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박상진과 채기중, 양쪽 세력이 합쳐서 1915 년 7월에 만든 것이 유명한 대한광복회입니다. 박상진이 총사령관이 되고 채기중이 그다음 역할을 맡습니다.

그런데 이 시기의 김좌진에 대한 기록은 좀 차이가 납니다. 1915년에 김좌진이 대한광복단에 들어가서 활동하다가 바로 붙잡혀서 3년간 감옥살이를 했다는 기록이 하나 있고, 다른 하나는 1916 년에, 나중에 임시정부에서 국무위원을 지내는 노백린 장군 같은 사람들과 함께 대한광복회에 가담해서 여러 동지들을 규합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1917년 봄에 대한광복회는 체계적이고 조직적이면서도 광범위하게 싸우자 해가지고 싸우는 방법에 대해서도 새로운 것을 모색하게 됩니다. 채기중은 뭐를 맡아라. 김좌진은 뭐를 맡아라. 노백린은 뭐를 맡아라 해서 역할분담을 하게 되었는데, 박상진 · 채기중은 영남지방의군자금 모집담당 책임자가 되고 노백린은 상해로 가서동을 하게 되고 김좌진은 만주로 파견이 됩니다.

지금 우리 학계와 관련해서 이상한 싸움이 하나 벌어지고 있는데 짤막하게 얘기를 하자면 이렇습니다. 이승만정권에서 부산정치파동때 국무총리를 지낸 장택상의 가족들이 국내 모교수를 고소했다는 얘기가 있었습니다. 그 교수는 사학자인데, 바로 장택상의 할아버지인 장승원이 친일파이고, 그래서 대한광복단에 장승원을 죽였다고 썼다고해요. 사실 장택상의 큰형 장길상이나 둘째 형 장직상은일제 때 대부호로서 친일행위를 많이 한 자들이거든요. 그러한 문제들이 얽혀서 고소전이 벌어지고 있다고 합니다.장택상이 김구 암살사건에 관련되어 있다는 논란도 쟁점이라는 소문이 있는데, 한편으로는 장승원을 죽인 사람들,그러니까 여기에 나오는 대한광복회 사람들을 크게 비난했다고 하고, 이것에 대해서 어떤 독립운동기념단체에서는 크게 화가 났다고 합니다. 세상이 혼탁하고 오랫동안친일파세상이 되다보니까 이상한 일들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하여튼 장승원은 칠곡 · 대구 일대의 거부였습니다. 그런데 이 장승원이 경상도 관찰사를 맡게 된 데는 허위 선생이 간여되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1907년 경상도 유생으로 팔도의병부대가 규합됐을 때 참모장으로 활약하던분이 유명한 왕산 허위인데, 허위는 사실 경상도에서는 명망이 높은 유생이었습니다. 장승원이 관찰사가 될 때는 허위의 입김도 작용했다고 하는데, 그때 허위가 장승원에게약속을 받아냈대요. 나라가 이렇게 기울어져가는데 나중에 우리가 의병투쟁을 할 때 군자금을 많이 내야 한다는 약속이겠지요. 그런데 대한광복회에서 영남지방의 군자금은 채기중이 모으기로 되어 있었잖아요? 해서 장승원에게 사절을 파견했어요. 장승원은 그때 향리로 돌아와서 큰 부호가 되어 있을 때인데 약속대로 돈을 내라고 했더니 못내겠다고 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채기중이 앞장 서고 두 사람이 따라가서 육혈포를 쏴 장승원을 죽여 버린 것입니다. 그게 유명한 장승원 사살사건입니다. 그래서 장씨 집안에서는 독립군 사람들을 원수처럼 여긴다는 소문도 있었는데, 이 사건에 김좌진 장군이 관련되어 있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김좌진 장군은 대한광복회에서 만주파견 업무를 받고 1917년 만주로 와 바로 대종교에 입교하면서 독립운동을 하게 됩니다.

Leave a Comment